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에, 사회시스템과 하물며 하나님께 원망하고 분노할 수 있다. 그 감옥같은 노동교화형을 받은 사람들에겐 과연 신이 있다고 느껴졌을까. 그렇기에 예수는 없다 하나님은 없다 그는 무정하다 라고 외친다. 우리네 삶이라고 다를까?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하루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날마다 살아가는 것이 버겁다고 느껴지고 또 눈을 들어보면 부자들, 특히 그 중에서도 지인들, 그들의 삶이 보여 비교되고 배아프고 비참하기 까지 하다. 그렇게 본인은 은퇴까지 달려가도 안락한 노후가 보이지 않는 절망과 함께 일을 하다보면 신은 없다고 느껴진다. 거기에 들려오는 누군가의 비극적인 죽음의 소식은 신이 있다면 무정하고 나쁜 존재라고 까지 느껴진다.
그렇다. 인생은 쉽지 않다. 공평하지 않다. 그러나 공평한 것이 있다면 죽음과 구원이다. 모두가 태어나면 죽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공평함이다. 그런데 구원도 공평할까?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때 아무 조건 없이 구원하셨다. 그는 우리가 구원을 위해 우리가 그에게 흥정 하기를 노력하기를 바라지 않으셨다. 마치 장발장이 미리엘 신부에게 자유와 은혜를 얻을 때도 미리엘 신부는 장발장에게 무엇을 바라지 않았다. 자베르 경감이 바리케이트에서 장발장에게 은혜를 입어 자유를 얻을 때도 장발장은 그의 자유의 값을 요구하지 않았다. 예수님도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 채찍을 맞으실때, 군중으로부터 모욕을 당하실 때,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때에도 우리의 죄를 대신 하였고 그 때 흘리신 피와 아픔의 값을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으셨다. 거저 주셨다. 그렇다 죽음이 그 심판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찾아오듯 영혼 구원의 비용과 기회 또한 모두에게 공평하게 거저 내어 주어 주셨다.
그러나 모두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장발장은 19년간 복역하며 쌓였던 분노, 원망대로 살고 있었고 그렇게 자신을 추위와 굶주림으로부터 따뜻한 잠자리와 식사라는 은혜를 제공한 미리엘 신부를 털어먹는 부끄러운 삶을 살았지만 그럼에도 용서하는 미리엘 신부의 자비를 받아드리고 자신이 이때까지 살아왔던 그 족쇄 곧 분노와 원망이 부끄러운 삶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새 삶, 구원 받은 자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그러나 바리케이트로부터 아무런 조건 없이 풀려난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베르 경감은 어떠했는가. 자신이 살아 왔던 방식이 눈물도 자비도 없이 누군가를 정죄하며 스스로 정의가 되어 살던 그 인생의 부끄러움와 변화된 삶을 살아가야된다는 두려움이 그를 스스로 죽게 하였고 결국 구원 받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장발장은 새 삶을 살기로 다짐하고 어떤 삶을 살았을까? 편안 했을까? 행복만 가득 했을까? 그는 분명 노력하는 삶을 살았다. 사장이 되었고 시장이 되어 부유한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도망자고 여전히 숨어 살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정직하게 살았으며 자비를 베풀며 살았다. 타협하며 살수 있었고 남을 희생시켜 더 편하게 살 수 있었다. 분명히 많은 내적으로 외적으로 시험이 있었을 것이지만 그 시험을 구원 받은 삶의 태도로 피하지 않고 이겨냈다. 시험이 있는 삶은 힘들다 쉽지 않다 스스로 속이고 남을 속이고 싶을 것이 지만 그러나 그는 성도의 삶을 살았다.
(기도)
하나님, 저는 고귀한 듯이 살았습니다. 제가 노력하는 것 성실하려 하는 것 귀천을 따지지 않고 살아가는 그 마음 모두 제 영광으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제 겸손은 겸손이 아니였고 그 속마음은 분노, 원망, 감사할 줄 모름, 교만, 음란함으로 채워져 시험이 닥칠땐 죄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저는 몸을 파는 이와 전혀 다를 것 없는 죄악 가득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 제게 구원의 은혜를 알려주셨고 저는 그 거저 주시는 생명의 삶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고 싶습니다. 제 인생의 방법을 그 오만함을 인정하고 부끄러이 여기고 성경에 나온 말씀 대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저는 빛의 삶 소금의 삶 그렇게 성도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제게 주님의 빛을 잃지 않게 인도하여 주시고 언제나 지금처럼 제 곁에서 주님의 길로 그 정의의 길로 인도하여 주소서.
이 죄인의 삶에 자녀의 기쁨을 부모의 사랑을 형제자매와 동료의 우정을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 우리를 위해 이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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